
[법조신문] [기획]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헬스장 먹튀’... “‘솜방망이 처벌’이 사태 악화 키워”
|법조신문 2024. 1. 19.자 기사
회원들에 선불 이용료 현금으로 받은 뒤 그대로 ‘야반도주’
서울중앙지법, ‘집유’ 관행 깨고 먹튀 관장에 실형 선고 눈길
피트니스 업계 “불법 사전영업에 따른 헬스장 난립이 원인”
국회서 ‘먹튀방지법’ 계류중... 법조계 “양형 기준 상향 필요”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한 상가 출입구가 굳게 닫힌 채 덩그러니 방치돼 있다. 오가는 행인들이 더러 있었지만, 거미줄이 깔린 황량한 공간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곳은 지난해 8월까지 수많은 회원들이 함께 모여 운동하던 체력단련장(헬스장)이었다.
지난해 9월 이곳에 있던 헬스장 관장은 돌연 운영을 중단하고 잠적해 버렸다. 선불로 받은 회비는 물론 돌려주지 않았다. 이른바 '먹튀'를 감행한 것이다. 아직 이용 기간이 한참 남아 있던 회원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를 입은 회원들은 이곳 관장이 야반도주하기 직전까지 신규 회원권을 고객들에게 판매했다고 말했다. 관장은 1년치 회원권을 "할인 해준다"는 명목으로 현금을 받고 팔았다. 고객들이 낸 회비는 차명계좌로 입금됐다. 피해자는 대부분 법적 대응에 능하지 않은 고령층이었다.
문 닫은 헬스장 맞은 편에서 다른 피트니스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관장은 "약 100여 명의 회원들이 (사태 이후) 우리 헬스장으로 넘어왔다"며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피해자들을 돕기로 했지만,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언급했다.
◆ 좀처럼 줄지 않는 ‘먹튀’ 행위...최근 ‘징역 8개월’ 실형 선고 눈길

위와 같은 헬스장 '먹튀' 사례가 좀처럼 줄지 않는 가운데, 최근 법원이 이와 유사한 사기 행각을 저지른 헬스장 관장에게 실형을 선고해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법원은 동일한 사건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사례가 많아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야기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준구 판사는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지난달 13일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2022고단6835).
A씨는 2020년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서울 강남구에서 헬스장과 필라테스짐, 골프연습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운영 초기부터 발생한 적자가 누적돼 일부 직원에게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임대료와 관리비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상적인 서비스 제공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A씨는 피해자 60여 명에게 이용권을 팔아넘긴 뒤 폐업했다. A씨는 이같은 수법으로 약 4830만 원을 편취한 혐의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 장기화로 운영이 어려워져 문을 닫게 됐을 뿐"이라며 "피해자들을 기망한 사실이 없고, 편취의 범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판사는 "A씨는 헬스장 등의 정상 운영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며 "심각한 적자 상황 등을 회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장기 약정 회원을 계속 유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도 고지를 받았다면 이용계약을 맺지 않거나 적어도 같은 조건으로는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A씨는 피해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피해자들을 기망해 이용료 명목의 금원을 편취했고, 편취 범의도 있었음을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2020년 대구지법은 유사한 수법으로 피해자 69명으로부터 4200만 원가량을 편취한 관장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2020고단4588), 2022년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118명의 피해자로부터 합계 약 7000만 원을 편취한 관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2022고단397).
◆ “돈 없어도 일단 열고 보자”... 불법 ‘사전 영업’으로 헬스장 난립

피트니스 업계에서는 '먹튀' 사례가 줄어들지 않는 핵심 원인으로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사전영업(프리세일) 행태를 꼽는다.
사전영업은 운동 기구와 인테리어 등 헬스장 시설을 완비하기 전에 회원권부터 판매하는 관행을 뜻한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뒤늦게 운동 기구를 들여오고, 인테리어 공사도 마친다. 무자본으로 헬스장을 창업하면서 갖가지 사업 리스크를 소비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피트니스·헬스장은 원래 사업 초기 정착 확률이 높지 않은 고위험 사업군에 속한다. 다양한 운동시설을 구비해야 할 뿐 아니라, 트레이너 및 강사의 실력과 지속성 있는 회원 관리가 동시에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전영업 관행이 널리 퍼지면서 창업 문턱이 현저히 낮아졌다. 이에 일부 업주들이 "일단 개업부터 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무분별하게 사업에 뛰어들었고,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헬스장은 사전영업 방식을 활용하면 창업 비용을 현저히 줄일 수 있는데, 계약금 명목으로 인테리어 비용과 임대차 보증금의 10%에 해당하는 돈만 있으면 나머지 비용은 사전영업으로 번 돈으로 메울 수 있다"며 "대부분의 헬스장이 이런 방식을 동원해 우후죽순 생겨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헬스장 사업은 소속감이 없어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둘 수 있는 프리랜서 트레이너들을 관리해야 하고, 사람들이 계속 이사 오지 않는 이상 회원 규모 확장에 한계가 있는 등 사업 성공 난이도가 높으므로 철저한 준비가 요구되는 사업"이라며 "그런데도 사전영업 방식으로 헬스장이 마구잡이로 늘어나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졌고, 결국 폐업하는 헬스장이 속출하며 '먹튀'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영업 관행은 현행법상 엄연한 불법이다. 헬스장은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체육시설법)'에 따라 구청에 신고를 한 후 영업이 가능한 신고 체육시설업에 해당한다(제10조 1항 2호). 신고 수리 이전에 사전영업으로 영리 행위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제38조 2항 1호).
신고 체육시설업은 지방자치단체에서 1차적으로 관리·감독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력 부족과 업체 측의 꼼수로 실질적인 감시와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서울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민원이 구체적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상 사전영업 여부를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주기적으로 기존 헬스장에 안전 점검을 나가기는 하지만, 감시인력 부족 등으로 새로 개업하려는 헬스장의 사전영업 점검을 따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작년 하반기에는 민원이 단 1건만 들어왔는데,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주로 경쟁업체 사장들"이라며 "아직 운동 시설 등을 구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천막을 치고 카드 단말기로 결제를 받는 등 사전영업 외양이 분명함에도 업체가 계약서에는 자유업인 '요가'를 명시하는 꼼수를 부리는 바람에 사건을 수사기관에 넘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단속 과정에서 업주들은 "이 곳을 헬스장으로 운영할지 요가학원으로 운영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 이게 왜 '헬스장 사전영업'이냐"고 따져 묻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법상 요가업과 필라테스업은 체육시설업에서 제외된다.
◆ 개정안 발의됐지만 실효성 ‘의문’... ”솜방망이 처벌부터 없애야“

국회에서도 헬스장 '먹튀' 행위를 막기 위한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울산 북구)은 지난해 9월 필라테스업과 요가업을 신고 체육시설업에 포함시키고, 3개월 이상 이용료를 미리 지불 받은 체육시설업자에게 영업중단 시 이용자 피해를 배상하는 보증보험 가입 의무를 부과하는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비례대표)도 이보다 앞선 8월에 보증보험 가입을 골자로하는 개정안을 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법 개정 만으로는 '먹튀' 현상을 완전히 근절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입법 개선과 함께 양형 기준을 높이는 등 먹튀 관장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0년 넘게 헬스장을 운영하는 B관장은 "최근 법원이 '먹튀' 사건을 일으킨 필라테스짐 대표에게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했지만 어차피 항소하면 집행유예로 감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법원이 이들의 사기 혐의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인정한다고 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다보니 한번 '먹튀'했던 관장들이 다른 곳에 가서 다시 헬스장을 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천주현(사법시험 48회) 형사법 전문변호사는 "보이스피싱 범죄도 처음에는 이와 같았지만, 지금은 범정부적으로 다루고 법원도 이에 편승 중"이라며 "더 이상 헬스장 먹튀 행각을 사인 간의 행위나 특정 범죄로 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체육시설법에 할부를 내세운 장기의 계약을 금지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어기거나 정도가 중한 경우 행정처분하도록 해야 한다"며 "법에 금지규정을 창설하면 이를 어기는 것이 곧 행정처분의 근거가 되고 또 이것이 불법행위의 근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또 "동법에 처벌 규정을 별도로 신설하는 것도 가능하고 이 경우 형법의 사기죄에 비해 특별형법이 된다"며 "계약의 형식과 다수 피해자성을 고려해 양형 기준을 다듬어 엄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전에 현행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사기죄 기망 여부 수사가 날카롭고 빨라야 한다"며 "이런 불법행위 고의 채무를 잘 살펴, 파산절차 악용도 없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권영환 기자 0hwan@koreanba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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