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대구수성구형사전문변호사 천주현 박사(대한변호사협회 대구 경북 1호 형사전문)의 저서 ‘수사와 변호’를 통하여, ‘변호권 행사의 실천적 연구_사건의 초기단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수사와 변호 44회차]

‘변호권 행사의 실천적 연구_사건의 초기단계’

‘수사와 변호’ (박영사)

제1편 수사

제2장 수사기관

제3장 수사의 방식과 종류

제4장 위법수사 규제의 필요성

제5장 수사방식의 변화

제6장 수사서류의 증거법상 기능

제7장 수사의 객체

제2편 변호

제1장 변호인 제도

제2장 피의자 변호권 강화방안

제1절 서론

제2절 내사단계 변호권 행사

제3절 수사단계 변호권 행사

제4절 신병결정단계 변호권 행사

제5절 공판준비단계 변호권 행사

제6절 변호권 행사의 실천적 연구

같은 장 제2절 내지 제5절에서는 단계별 변호권 행사와 강화방안을 차례대로 연구해 보았다. 이제 제6절에서는 실무상 형사변호인이 피의자를 처음 접한 순간부터 실질적 수사변호를 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내용에 대한 실천적 연구를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문헌이 부족한 관계로 본 절의 연구방법은 그간의 논의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 필자의 경험칙에 의한 방법론 또는 대안의 제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방법론상 한계를 인식하고도 본 절을 정리한 이유는, 앞으로는 필자와 같은 시도가 더욱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과 희망 때문이었다.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에서는 Lawyer's Skills(각주 1), Criminal Litigation Handbook(각주 2)를 포함한 각 법률과목의 변호사 실무지침서가 수시로 출판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러한 연구가 거의 시도되지 못한 점이 늦은 감조차 있다.

아래에서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변호인의 바람직한 변호범위와 방향을 실무적 차원에서 정리하기로 한다.

이곳에서 소개한 논의 이외에도 필자는 본서의 곳곳에서 수사절차 및 형사소송 전반에 대한 실무의 모습과 개선책을 소개하고 있으므로 부족한 부분은 해당 부분에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변호권 행사와 직접 관계되어 유기적 연결성을 띤 관련부분은 제1편 제1장 제3절 4.의 고소, 제3장 제2절 2.의 피의자신문 및 3.의 참고인 조사, 제2편 제2절 2.의 각 변호인의 권한, 제2장 제1절 내지 제5절의 단계별 변호권 행사, 제3장 제4절 고소대리 부분이다.

1. 사건의 초기단계

가. 상담 및 선임

수사단계에서의 변호는 변호인의 지위를 얻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변호인의 지위는 피의자 또는 가족 등으로부터 변호권을 위임받는 방식으로 부여되고, 상담을 통한 계약이 성사됨을 전제로 한다.

상담시 유의할 점은 상담을 희망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피의자 본인이 직접 내방한 것인가, 아니면 피의자가 구속 중이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이 대신 온 것인가에 따라 위임계약의 성부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피의자가 직접 방문한 것이라면 사건위임의 진정성이 높고 변호방향을 설정하는데 절대적인 도움이 되나, 가족이나 친구가 방문한 경우라면 진정성이 낮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피의자가 구속 중이어서 부득이하게 제3자가 상담을 하는 경우라면 별개이다.

내방객이 어떤 서류를 갖고 내방하여 상담을 희망하는지도 잘 살펴야 한다. 아무런 서류 없이 막연히 “피해자란 사람이 얼마 후 고소한다고 하니 어떻게 될지 알고 싶다”라거나, “경찰조사가 내일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며 경찰 조사방향만을 집요하게 스크린 하는 경우이거나, “피해자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합의하면 어떻게 될지” 만을 알아보는 방식이라면 사건위임의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볼 것이다.

반면, 본인이 내방하였고 고소인과 사이에서 그간 체결된 계약서, 정산내역, 민사소송 자료를 제시하면서, “현재 고소당해 어떤 경찰서에 사건이 있으며, 1회 조사는 언제 받았는데 경찰은 현재 뭐라고 말하고 있다”라는 등 상세하고도 성의 있는 자세로 상담을 구하고 있다면 사건위임계약을 전제로 다음과 같은 것에 주의하여 초기변론방향을 곧바로 머릿속에서 수립하여야 한다. 즉 ① 수사 중이거나 고소당한 죄명은 무엇인가. ② 피해액(각주 3)이 얼마인가. ③ 변제한 금액은 얼마인가. ④ 변제가능 금액은 얼마가 될 것인가. ⑤ 범행회수 및 그 기간은 얼마나 되는가. ⑥ 피해자 수는 몇 명인가. ⑦ 별건이 다른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인 사건은 있는가. ⑧ 몇 차례 조사받았으며, 그간 조사에서 어떤 내용으로 답변하였는가. ⑨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사실이 있는가. 영장청구 가능성과 그 시기에 대해 들은바가 있는가. ⑩ 전과는 어떠하며, 가장 최근의 전과 및 수형종료일자는 언제인가. ⑪ 피의자는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정하나 경한 처벌과 불구속을 희망하는가. ⑫ 사회적 유대관계는 어떠한가. ⑬ 그간 충분히 수사기관에 자신의 입장을 진술하였으며, 제출한 자료도 충실하였는가. ⑭ 피해자와 합의를 위해 시도한 연락은 몇 차례나 되며, 피해자는 어떻게 느끼는가. 당해 사건은 친고죄(각주 4) 또는 반의사불벌죄인가. ⑮ 정상변론에 사용할 자료는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 유의할 점이다.

필자가 제시한 위 일응의 기준은 어떻게 보면 피의자신문에서 수사기관이 누락하지 않아야 할 조사대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나. 구속피의자의 경우 변호접견

사건위임계약서를 작성한 후 변호인선임계를 당해 수사기관에 서둘러 제출하여야 한다. 영장청구가 예상되는 사건인데도 변호인선임계를 늦게 제출할 경우 영장청구사실이 변호인실에 통지되지 않고 당사자에게만 통지된다. 이 경우 초반부터 의뢰인의 신뢰가 하강함은 당연하다.

선임계 접수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서둘러 변호접견을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상담시 가족으로부터 사건의 내막과 진행 상태를 들은 바 있지만, 사실관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피의자이다. 또한 빠른 접견과 적기의 접견이 없을 경우 수감 중인 피의자로부터 신뢰를 잃기 쉽다. 비용지불은 가족이 하였으나 피의자로부터 신임을 잃을 경우 사건이 중도에 해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변호접견시 전회 상담한 가족과의 상담내용을 최대한 숙지하여 이미 사건의 상당부분을 파악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피의자가 변호인을 신뢰하고 향후 수사절차 및 공판절차에서도 변호계획에 적극 따르게 된다. 반드시 파악하고 와야 할 부분은 역시 위 상담기법에 드러난 부분이 된다.

피의자로부터 가장 상세히 들어야 할 부분은 범행의 경위 부분이다. 범행의 경위가 어떠하냐에 따라 범죄사실 중 범행의 동기, 범행의 방법, 고의, 범행 후 조치 등의 내용에서 큰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외 유의할 것은 피의자에게 헛된 희망을 주지 않아야 하고, 수사진술이 오락가락하지 않도록 주의시켜야 하며, 피의자의 집사 노릇을 하는 등 교정질서를 교란시키지 않아야 한다.

다. 변호방향의 설정, (반증·참고)자료의 수집

(1) 변호방향 설정의 어려움

변호방향을 설정하여 실제 변호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공판단계와는 달리 안개 속에서 길을 찾는 것 또는 안개 낀 도로를 차로 질주하는 것과 같다. 후자가 더 위험한데 후자는 영장청구가 예정된 사건으로 사건진행마저 신속하다.

수사변호가 어렵고 방향이 쉬 보이지 않는 이유는 어떠한 수사기록도 변호인이 쉽게 확보할 수 없고, 검사가 생각하는 범죄사실이 무엇인지도 아직 알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사 과정에서 수시로 수사기관의 범죄사실이 바뀌기도 하므로 미리부터 검사가 생각하는 범죄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때로는 당연하다.

오직 확보할 수 있는 것은 피의자와의 상담에서 파악한 사실관계이다. 물론 피의자 스스로의 진술에 대해서는 검찰에 열람·등사를 신청할 수 있지만, 수사 중이라는 이유 또는 수사상 목적으로 불허되거나 지연될 확률이 높고, 피의자의 진술이 기재된 피의자신문조서 일부를 입수한다 하더라도 역시 피의자와의 상담에서 파악한 내용과 대부분 겹칠 뿐이어서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의자의 진술은 어차피 큰 틀에서 거의 일정하고, 특히 경제사범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또 고소장 및 범죄사실을 뒷받침하는 제출증거, 참고인 진술조서, 수사기관 내부의 수사보고서, 수사기관이 그 외 방법으로 확보한 압수물 및 사진, CCTV 동영상, 계좌추적내역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할 길이 없어 피의자 진술이 기재된 조서 일부만을 복사한다 하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결국 경험칙에 입각해 수사변호를 계획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 생각할 점 >

수사기록 열람·등사의 어려움과 필요성에 대하여 앞서 상세히 살핀 사실이 있으나, 때로는 불평등한 변호의 기회로 누구는 수사변호계획상 어려움을 겪고, 누구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정확한 변호를 준비하기도 한다. 지금은 많이 개선된 부분이겠으나, 종래 검찰전관 변호사의 경우 함께 퇴직하여 현재 사무장으로 데리고 있는 전직 검찰수사관을 검찰청에 보내 나름대로 알아보게 한 후 고소장 등 수사방향이 되는 문서를 정상적 방식 이외의 방법으로 확보하여 미리 수사변호에 대비하는 경우가 있거나, 청구된 후 결재를 기다리고 있는 영장을 미리 확보하여 구속사유를 사전에 소멸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구속사유 중 예컨대, ｢피해액이 거액이고, 이 건 횡령행위가 피의자의 지시로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구속하지 않을 경우 횡령한 돈을 타에 은닉하고 관련자들에게 허위진술을 교사하는 방식으로 증거를 은닉할 우려가 높으며, 특경가법위반죄로서 중형 형선고가 예상되어 도주의 우려가 높다｣는 내용을 발견할 경우 변호인은 서둘러 구속의 필요성을 소멸시키는 방식의 준비를 한 후 느긋하게 영장심사를 받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수사의 보안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작용하는가 하는 점은 향후 학계에서 더 연구해 볼 주제라 할 것이다.(각주 5)

(2) 부인하는 피의자 변호의 방향

(가) 부인하는 피의자의 주장이 법률적으로 타당한 면이 있더라도 아예 ‘범죄인정안됨’ 형태의 무혐의 결정을 받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실무상 대부분의 무혐의 결정은 ‘증거불충분(證據不充分)’이다. 고소가 각하사유가 아니어서 조사를 하였고, 고소장 및 증거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여 보아도 기소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이다. 고소인의 주장 내용으로는 범죄로 볼 여지가 있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내용으로 고소인들이 가장 억울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자, 거꾸로 피의자가 가장 용이하게 빠져나올 수 있는 지점이다.

증거불충분 결정문의 구조는 고소인의 주장요지를 요약한 후 그에 부합하는 증거를 설시하고, 피의자의 변소요지를 인용한 후 그에 부합하는 수사결과를 적시하면서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증거불충분이 되기 위해서는 대체로 고소인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는 별반 없고, 피의자의 변명에 부합하는 증거가 있을 것을 요한다. 이 같은 경우 범죄사실은 고소인의 일방적 주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이러한 논리구조를 이해하고 변호인은 피의자가 증거불충분의 무혐의 결정을 받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 그러하기 위해 시급한 것은 범죄사실을 현 상황에서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으로 그 방법은 앞서 살핀 바와 같이 평소 고소인과 벌어진 법적·금전적 다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피의자로부터 사실관계를 얻고 정리하는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관계 중 법적으로 무의미한 것을 추출하여 분리제거한 후 법적으로 문제될 것으로 보이는 부분을 공소사실로 미리 확정해 놓아야 한다.

만약 피의자가 1, 2차 경찰조사를 받은 상황이라면 경찰관이 무엇을 묻고 피의자는 뭐라고 답했는지를 잘 파악해야 하며, 운 좋게도 대질조사까지 있었던 사건이라면 동일 쟁점에 대해 피의자와 고소인에게 각기 어떤 질문을 하였는지를 파악까지 한다면 범죄사실(犯罪事實)은 대부분 선명해진다. 범죄사실에 대한 파악실패는 수사변호실패로 직결되므로 너무나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범죄사실을 예상하여 파악했다면, 구체적인 변호방식은 이제 형법각론과 형법총론의 내용 중 무죄가 될 부분들을 찾아내어 변호준비를 하게 된다.(각주 6)

예컨대 횡령죄(橫領罪)로 보인다면, ① ‘위탁관계의 불성립’, ② 위탁관계는 성립된 것이 맞다고 보일 경우 ‘금전의 소비는 피해자로부터 위임받은 취지였다는 사실’ 또는 ‘적법한 이사회 결의 또는 주주총회 결의를 거쳤다는 사실’, ③ 위임받은 취지를 입증할 자료가 없거나 위임취지에 반했을 소지가 있거나 또는 법인의 목적 범위 외로 집행되어 이사회 결의도 형사사건에서 무의미할 경우라면 당시의 여러 정황으로 피의자에게 ‘불법영득의사는 없었다는 사실’ 등을 집중적으로 찾아내어 조명하는 방식의 변호방향을 수립하게 되는 것이다.

각 주장사실들을 입증할 자료들을 (반)증거자료 또는 참고자료의 형태로 제출준비를 해야 함은 당연하다.

(라) 중요 재산범죄의 변호시 효과적인 쟁점 변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실무상 부인(否認)사건으로 가장 변호하기 어려운 부분은 사기죄(詐欺罪)에서 기망의 고의(欺罔故意)가 없었다는 점이다.

즉 피의자는 지불능력과 지불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기망할 생각이 없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검찰과 법원은 쉽게 그렇게 믿어주지 않는다.

변호인은 피의자가 돈을 받을 당시 지불능력과 지불의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인데, 실제에서는 강력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즉 지불능력이 있었다고 입증하여도 한 푼도 갚지 않았다면 지불의사가 없었다고 보아 곧바로 사기죄 성립을 인정하는 경우, 거꾸로 지불의사가 있었다며 초기 수 개월간 이자를 지급한 사실을 입증해 보아도 당시 부채가 많았다는 점이 조사되면 지불능력이 없는 자가 언젠가는 원금을 갚지 못할 것을 예상했었다는 이유로 역시 지불의사 없었음을 인정하여 사기죄 성립을 긍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불능력 또는 지불의사 있었음을 입증하는 효과적 방법은 장기 거래관계에서 이미 많은 돈을 변제 또는 결제하여 온 사정을 입증하는 방법이다. 다만 장기 거래관계에 있었더라도 자력이 어려워진 시기 또는 부도 직전에 다량의 물품을 공급받거나, 다액의 어음 또는 당좌수표· 가계수표를 다수 발행하거나, 갑작스레 많은 돈을 빌린 경우라면 유죄가 선고될 확률이 높다. 앞전 거래관계와 문제된 기망의 거래관계가 사실상 분리되기 때문이다.

2) 횡령죄(橫領罪)의 핵심적 변론내용은 위탁관계(委託關係)에 기한 보관자의 지위에 있지 않았다는 점이 될 것이므로, 명의신탁된 재산이 아니고 직접 매수한 것이라거나 상속받은 재산으로 고유재산이라는 점, 동업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고 따라서 민사적으로 이익금·성과금을 배분하기 전까지는 피의자 또는 피의자 회사의 단독소유였다는 점(각주 7) 등을 입증하여야 한다.

또 횡령행위는 불법영득의 의사(不法領得意思)(각주 8)를 실현하기 위하여 외부로 표출하는 일체의 행위이고, 소비, 은닉, 반환거부, 타 용도에 사용, 증여·매각의 의사표시 등 사실상의 행위, 매각, 대여, 질권설정, 담보제공, 증여 등의 법률상의 행위가 모두 포함되나,(각주 9) 이때의 반환거부는 영득의사의 표출로서 횡령행위와 같다고 볼 수 있을 정도여야 하지 불법영득의사의 발현으로 볼 수 없는 단순히 반환을 거부한 사실만으로 곧바로 횡령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주장하여야 한다.(각주 10)

따라서 변호인으로서는 정당한 이유 있는 반환거부였다는 점(각주 11)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소인의 반환요구가 당초 반환시기보다 앞서 있어 반환의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다거나, 반환하려 해도 반환이 쉽지 않았다는 사정을 주장하여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위탁 당시 피의자와 고소인 간 어떠한 약정에 의해 피의자가 고소인의 물건을 보관하게 되었는지 경위를 상세히 파악해야 하며, 반환요구 당시 고소인의 요구가 어떠했으며 피의자가 어떤 방법으로 반환하려 했으나 반환하지 못하였는지를 상세히 변론하여야 한다.

3) 배임죄(背任罪)와 관련하여서는, 배임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신분(身分)이 있어야 할 것이고, 여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 함은 양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를 둔 타인의 재산의 보호 내지 관리의무가 있음을 그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경우라 할 것이므로, 그 사무가 타인의 사무가 아니고 자기의 사무이거나 단순히 타인에 대하여 채무를 부담함에 불과한 경우라면 본인의 사무로 인정될지언정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각주 12) 예컨대 의사가 의료인 아닌 자에게 사실상 고용되어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병원을 폐업하면서도 병원 건물주에게 해지통고를 하지 아니하고 건물보증금 반환청구도 하지 아니하여 계속적으로 보증금이 차임으로 상계되고 있을 경우라도 의사 자신이 임차인일 경우 임대차계약해지 및 보증금반환청구사무는 자기의 사무이므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할 것을 전제하고 있는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란 점을 변호하여야 한다.

배임죄에서 실무상 문제되는 구성요건을 보면, 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 ② 임무에 위배한 행위를 한 것이 맞는지, ③ 배임의 고의가 있었는지, ④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것은 어떠한 경우인지이다.

① 배임죄는 진정신분범이다. 형법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만 규정하여 해석상 복잡성이 가중되고 있다. 따라서 명확한 제한해석이 필요한 바, ‘타인의 사무(他人事務)’라고 하기 위해서는 양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를 둔 타인의 재산의 보호 내지 관리의무가 있음을 그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경우이어야 하고, 그것이 단순한 부수적 사무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해석해야 한다.

결국 타인의 사무인지 자기 사무인지의 구별기준으로는, 계약문언 또는 신의칙상의 사무의 내용, 사무처리의 내용이 상대방의 재산보전에 본질적으로 중요한지의 여부, 사무처리의 불이행이 상대방의 이해관계에 중대하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의 여부 등에 따라서 실질적 관점에서 판단하여야 한다.(각주 13) 대법원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란 양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초를 두고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를 대행하거나 타인 재산의 보전행위에 협력하는 자 등을 말한다”고 판시(각주 14)하여 대동소이하다.

사무는 재산상의 사무로 한정하여 해석함이 통설이다. 사무처리의 근거는 법령, 계약, 관습, 사무관리, 사실상의 신임관계이다.(각주 15)

법령 또는 정관으로 단체의 대표가 되어 업무집행을 하는 자, 근로계약에 의해 회사를 위해 근무하는 자가 배임의 주체가 됨은 자명하다. 가장 많은 수의 배임 피고인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조합의 대표자, 종중 회장‧감사,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다. 그 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우리 법원이 인정한 예(認定例)로는, 부동산 이중매매의 매도인으로써 중도금을 지급받아 이제는 마음대로 계약을 해제할 수 없게 되었고 부동산 등기협력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자,(각주 16) 채권자에 대한 양도담보권 취득을 위한 주식교부절차 협력의무를 위배한 자, 채권양도절차를 밟아줄 의무를 부담하는 채권양도인,(각주 17) 계금을 불입 받아 계금지급의무(각주 18)가 있는 계주 등이 있다.

② 임무에 위배된 행위(任務違背行爲)와 관련해서는, 판례는 “배임행위에 있어서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라 함은 사무의 내용, 성질 등 구체적인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혹은 신의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과 사이의 신뢰관계를 져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포함한다”라고 하여 각 사건에서 배신행위에 대한 판단권을 각 법관에게 일임하고 있다.(각주 19) 따라서 배임죄에 있어서 임무위배행위는 전형적인 비정형성을 지닌 구성요건표지이며, 보통의 정상적인 임무수행행위와 일상적인 시각에 의해서 분명하게 구분하기 곤란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각주 20)

배임행위는 법률행위뿐만 아니라 사실행위도 포함된다. 배임행위의 예로는 금융기관 임·직원의 부실대출, 기업의 분식결산이 대표적이다.(각주 21) 사무처리와 관련하여 피해자가 동의한 경우라면 통상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배임죄가 성립할 수도 있다. 대주주의 승낙과 이사회 결의를 거쳤더라도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성실한 직무수행을 할 의무가 있으므로 그 결의내용이 주주 또는 회사 채권자를 해하는 불법한 목적이 있었던 경우(각주 22)에는 배임죄의 죄책을 진다고 해석된다. 또 주식매매와 같은 모험거래의 경우에도 비록 고소인이 이러한 거래방법을 승낙하거나 동의하였다 하더라도 사무처리자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였다면 배임죄 성립이 가능하다.(각주 23)

③ 배임의 고의(背任故意)는, 고의를 부인하는 판단기준, 경영판단의 법칙 적용여부에 따라 인정여부에서 차이가 있다.

업무상배임죄의 고의는 업무상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다는 의사와 자기 또는 제3자의 재산상의 이득의 의사가 임무에 위배된다는 인식과 결합되어 성립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업무상배임죄의 주관적 요소로 되는 사실(고의, 동기 등의 내심적 사실)은 피고인이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문제가 된 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범의를 부인하고 있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 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각주 24) 피고인이 본인의 이익을 위한다는 의사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간접사실에 의하여 본인의 이익을 위한다는 의사는 부수적일 뿐이고 이득 또는 가해의 의사가 주된 것임이 판명되면 업무상배임죄의 고의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각주 25)

또한 이른바 경영상의 판단과 관련하여 기업의 경영자에게 배임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업무상배임죄에 있어서 고의의 입증방법과 마찬가지의 법리가 적용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기업 경영에 내재된 속성을 고려하여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미필적 인식을 포함)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엄격한 해석기준은 유지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한 인식이 없는데 단순히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각주 26) 그러나 어떠한 행위가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사무의 성질·내용, 사무집행자의 구체적인 역할과 지위, 행위 당시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그 행위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통상의 업무집행의 범위를 일탈하였는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는 이상, 경영자의 경영 판단에 관하여 위와 같은 사정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법령의 규정, 계약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구체적 상황과 자신의 역할·지위에서 당연히 하여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행함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였다면 그에 관한 고의 내지 불법이득의 의사(각주 27)는 여전히 이를 인정함이 마땅하다.(각주 28)

따라서 실무상 경영판단 법칙을 주장하여도 재판에서는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다.(각주 29) 경영판단을 함에 있어 계열사에 피해가 돌아갈 것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였다는 점, 거쳐야 할 적법한 상법상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그 실질에 있어 정당하지 않아 형식적 합법성만으로는 불법성이 사라지지 않는 점, 대표이사이기도 하지만 통상 이들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이득이 결국은 행위자에게 경제적 이득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회사의 추가 손해를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보기 어려운 점, 충분한 검토 내지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점, 오히려 미필적으로나마 손해발생을 예견하거나 인식할 수 있었는데도 무리하게 감행한 점 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각주 30) 완전한 경영판단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④ 재산상의 손해(損害)를 가하였다 함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위험범설). 재산상 손해의 유무에 대한 판단은 본인의 전(全) 재산 상태와의 관계에서 법률적 판단에 의하지 아니하고 경제적 관점(經濟的 觀點)에서 파악하여야 하므로, 법률적 판단에 의하여 당해 배임행위가 무효라 하더라도 경제적 관점에서 파악하여 배임행위로 인하여 본인에게 현실적인 손해를 가하였거나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에는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에 해당되어 배임죄를 구성한다. 이러한 법리는 최초 배임행위가 법률적 관점에서 무효라고 하더라도 그 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계속적으로 배임행위에 관여하여 본인에게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각주 31)

그러나 예컨대, 회사가 행한 대출의 실질이 자금 이동 없는 서류상의 채무자 변경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담보력에 변화가 없어 이로 인하여 대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염려가 생긴 것이 아니라면 그 대출행위는 배임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고,(각주 32) 재산상의 손실을 야기한 임무위배행위가 동시에 그 손실을 보상할 만한 재산상의 이익을 준 경우, 예컨대 그 배임행위로 인한 급부와 반대급부가 상응하고 다른 재산상 손해(현실적인 손해 또는 재산상 실해발생의 위험)도 없는 때에는 전체적 재산가치의 감소, 즉 재산상의 손해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 경우에도 배임죄는 성립되지 아니한다.(각주 33)

일단 손해의 위험성을 발생시킨 이상 사후에 담보를 취득하였거나 피해가 회복되었다 하여도 배임죄의 성립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각주 34)

⑤ 마지막으로 배임행위로 인하여 배임행위자 본인이나 제3자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였다고 할지라도 행위자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사실이 없다면 배임죄가 성립할 수 없다.(각주 35)

(마) 위와 같은 변호인의 변호노력 이외에 중요한 것이 바로 피의자신문에서 피의자가 구체적이고 일관된 (반박)진술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기죄의 경우라면 고소인의 주장과 같은 기망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1회 조사 때 기망의 대상, 수단, 방법(장소, 일시 포함) 등을 구체적으로 부인한다 해도 수사기관은 참고인을 다시 불러 추가로 조사하여 범죄사실을 재특정하는 경우가 많아 여간해서는 예상되는 기망행위를 일거에 예측하고 부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만약 일관성 있는 진술이 아닌 그때그때 마다의 진술이 되고 말 경우 수사기관은 결국 고소인의 주장에 신빙성을 두고 혐의가 있다는 결정을 하게 된다. 따라서 고소인의 진술 또는 수사기관의 유도신문에 일일이 대응하여 비 일관된 임시변통의 답변을 하는 방법으로 범행을 부인할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알리바이, 반대사실에 대한 구체적 진술, 피의자의 주장에 부합하는 참고인 조사요구, 스스로의 진술에 부합하는 객관적 자료제출로 일관성 있는 진술을 하도록 조언하고 일정하게 변호해 주어야 한다.

(바) 부인하는 사건의 경우라 하더라도 피해변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피의자 진술에 상반된 고소인 주장이 상당히 상세하고, 고소인의 주장에 부합하는 참고인이 여럿 있으며 각 진술에 부합하는 물적 증거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반드시 피해변제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기죄는 피해금액이 많지 않더라도 죄질이 좋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 또 사기죄에서 우리 판례가 손해발생을 요하지 않는다고 보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재산의 개념에 대해 우리 판례는 경제적 교환가치 있는 모든 경제적 가치는 그것이 법률적으로 허용하는 것이건 아니건 모두 재산으로 보는 경제적 재산개념(經濟的 財産槪念)(각주 36)을 취하여 대단히 넓게 보고 있고, 손해의 발생에 대해 판례는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하여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損害不要說).(각주 37) 즉 “사기죄의 성립에 피해자의 재산상 손해의 발생을 요하지 않는다”고 보아 편취액의 산정에 있어서도 피해자가 대가로 취득한 가액을 공제하지 않고 있으며,(각주 38) “금융기관의 대출이나 신용보증기금의 신용보증서 발급이 피고인들의 기망행위에 의하여 이루어진 이상 그로써 곧 사기죄는 성립하는 것이고, 소론과 같이 담보권의 설정이 있었다 하여 결론을 달리하는 바는 아니며 또 그러한 경우 사기죄의 이득 액에서 담보물의 가액을 공제하여야 할 성질의 것도 아니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각주 39)

따라서 법률적으로 피해자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거나, 법률상 보호가치 있는 이익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결국 변호인은 법리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기보다는, 실제 (순수 경제적 관점에서) 피해자가 입은 손해가 그만큼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여야 할 것이다. 즉 일부금은 변제했다든지, 애초에 약정이자가 없었고 불확정기한부 채무였기 때문에 이자 상당액의 손해는 최고일 전까지는 발생한 것이 아니라든지 하는 내용의 변론을 통해 손해액을 줄이는 것이 유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의 변론은 위 판례의 입장을 고려할 때 죄의 성부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양형에 참고 될 주장이다.

(3) 자백하는 피의자 변호의 방향

이 경우는 변호방향이 수월하다. 이 유형은 범행의 경위를 통해 부득이했거나 우발적인 범행임을 강조하고, 수사 초기부터 적극 협조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의 역력함, 피해금액 중 일부는 언제까지 변제를 마치겠고 나머지 변제계획은 어떠한지, 가중 전과는 없다는 사실, 그 외 일반 정상변호 사항들을 가급적 빠짐없이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변호방향이 된다.

유의할 것은 정상에 대한 자료는 객관적인 것을 제출해야 하지, 일방적으로 의견서에 기재만 한다고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 각주 >

1) Julian Webb/Caroline Maughan/Mike Maughan/Marcus Keppel-Palmer/Andrew Boon, Lawyer's Skills, OXFORD UNIVERSITY PRESS, 2011-2012. Julian Webb/Caroline Maughan/Mike Maughan/Marcus Keppel-Palmer/Andrew Boon, Lawyer's Skills(LEGAL PRACTICE COURSE GUIDES), OXFORD UNIVERSITY PRESS, 2008-2009.

2) Martin Hannibal/Lisa Mountford, Criminal Litigation Handboo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2012.

3) 우리의 경우, 피해액은 구속기준, 적용법조의 차이, 선고형량에서 차이를 가질 뿐 범죄의 성립 그 자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수액범(數額犯) 제도를 통해 일정 금액 이하의 재산범죄는 아예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1997년 11월 최고인민법원에서 “關干審理竊盜件具休應用法律若干問題的解釋(절도사건을 심리함에 있어서 법률의 적용에 관한 약간문제의 해석)”을 공포하였는데, 본 규정에 의하면 국가, 집단 또는 개인의 재산을 절도한 경우 그 액수가 RMB500원 이상만이 죄가 성립된다. 수정을 거친 현행 중국 형법에서 규정한 범죄가 440개가 넘는데 그 중에서 300여개의 범죄의 성립이 범죄액수와 관련된다. 이를 ‘수액범 제도’라 하고 있다. 이러한 수액범의 법적 근거로 중국 형법 제13조의 단서규정을 들고 있다. 즉, ‘정상이 현저히 경미하고 위해가 크지 아니한 경우에는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우리의 경우 만약 피해액이 경미하여 벌하기 마땅치 않다면 검사에 의해 기소유예 처분을, 판사에 의해 선고유예 판결을 통해 구제할 길이 있음에도, 중국의 경우에는 이전부터 실체법을 중시하고 절차법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실체법에서 해결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상세한 내용은 박종근(朴宗根), “중국형법에서 범죄未遂에 관한 문제점과 해결방안”, 「비교형사법연구」14권 2호, 한국비교형사법학회, 2012, 307-308면 참조).

4) 2013. 6. 19. 형법 개정과 성폭법 개정으로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이 삭제됨에 따라 기존 친고죄였던 강간죄와 그 미수, 유사강간죄와 그 미수, 강제추행죄와 그 미수, 준강간, 준강제추행죄와 그 미수, 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죄, 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 및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 추행죄(형법 제297조부터 제300조, 제302조, 제303조 및 제305조)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 공중 밀집 장소에서의 추행죄 및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죄(성폭법 제10조 제1항, 제11조 및 제13조)를 저지른 경우 고소가 없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5) 同旨 표창원, “경찰수사권 독립이 인권보장의 첩경”, 「형사정책」제15권 제1호, 한국형사정책학회, 2003, 54면.

6) 참고로 실무상 재판단계에서의 무죄율은 대단히 낮다(노정환, “수사절차독립성론-수사의 개념 및 원칙을 중심으로-”, 「법학실무연구회」발표논문, 대검찰청, 2009. 5, 57면 주1); 노정환, “수사절차독립성론(上)-수사의 개념 및 원칙을 중심으로-”, 「법조」57권 3호, 법조협회, 2008, 115면 주1)을 보면, “2007년 대검찰청 국정감사 업무보고에 따르면, 1심 총 선고인원 1,173,803명 중 무죄선고는 2,888명으로 0.25%에 불과하고, 또 무죄판결 상당부분이 증거불충분인 점을 감안하면 진정한 의미의 무죄율(죄 안됨)은 훨씬 더 낮을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현장에서는 법리다툼보다는 사실인정(事實認定) 문제에 전력을 쏟고 있다고 봄이 맞고, 유·무죄 다툼보다는 양형(量刑)에 전적으로 매달리고 있다고 봄이 정확할 것이다.

7) 이러한 설시예가 실무상 가장 많다.

8) 불법영득의사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하여 위탁의 취지에 반하여 권한 없이 그 재물을 자기의 소유인 것 같이 처분하는 의사를 말하는 것이다(대법원 2005. 7. 29, 선고 2005도685 판결).

9) 박상기, 형법학, 집현재, 2013, 655면.

10) 대법원 1992. 11. 27, 선고 92도2097 판결.

11) 예컨대, 유치권이 존재하여 반환을 거부한 점(대법원 2006. 2. 10, 선고 2003도7487 판결).

12) 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7도7060 판결; 대법원 1987. 4. 28, 선고 86도2490 판결.

13) 권오걸, “동산의 이중매매와 배임죄- 부동산 이중매매와의 비교를 통해서 -”, 「비교형사법연구」13권 2호, 한국비교형사법학회, 2011, 405면, 415면, 417-419면 각 참조.

14) 대법원 2004. 6. 17, 선고 2003도7645 전원합의체 판결.

15) 박상기, 형법학, 집현재, 2013, 673면.

16) 그러나 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판결에 의해 동산 이중매매의 매도인은 설령 중도금까지 받은 상태라 하더라도 매수인의 재산의 보호 내지 관리 행위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어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비판적 견해로는 권오걸, “동산의 이중매매와 배임죄- 부동산 이중매매와의 비교를 통해서 -”, 「비교형사법연구」13권 2호, 한국비교형사법학회, 2011, 418-419면, 422-424면 각 참조.

17) 대법원 1999. 4. 15, 선고 97도666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7. 5. 11, 선고 2006도4935 판결.

18) 대법원 2009. 8. 20, 선고 2009도3143 판결.

19) 대법원 2004. 7. 9, 선고 2004도810 판결.

20) 권오걸, “동산의 이중매매와 배임죄- 부동산 이중매매와의 비교를 통해서 -”, 「비교형사법연구」13권 2호, 한국비교형사법학회, 2011, 424면; 법률신문, 오피니언(황정근 변호사),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 2015. 3. 12, 14면.

21) 박상기, 형법학, 집현재, 2013, 673면.

22) 대법원 2000. 5. 26, 선고 99도2781 판결.

23) 박상기, 형법학, 집현재, 2013, 673-674면.

24) 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0도3716 판결;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 대법원 2009. 6. 11, 선고 2008도4910 판결.

25) 대법원 2009. 2. 6, 선고 2008도522 판결.

26)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 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도6075 판결; 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8도522 판결; 대법원 2009. 6. 11, 선고 2008도4910 판결.

27) 우리 법원은 불법영득의 의사 또는 불법이득의 의사를 추가로 요구하고 있으나, 이를 곧 고의의 내용으로 파악하고 있다(박상기, 형법학, 집현재, 2013, 678면 참조).

28) 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도6075 판결.

29) 同旨 법률신문, 오피니언(황정근 변호사),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 2015. 3. 12, 14면.

30) 同旨 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도6075 판결은, “이 사건 유전인수사업 추진 경위, 이 사건 유전인수사업과 관련하여 인수할 유전의 사업성·경제성, 국내외 유수 기업의 사업 참여 가능성, 인수 자금 확보 방안 등과 관련하여 이를 평가하고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검토 내지 검증의 정도, 피고인 1이 실제 행한 검토와 검증 노력의 정도, 사업 추진과 관련하여 철도청 내부와 OO은행 등 관련 외부 기관의 문제 제기에 대하여 위 피고인이 보인 태도와 그 문제점 보완 노력의 정도, 철도청 내부 회의 등에서 위 피고인이 보고한 확인되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내용과 그 보고 내용이 사업 추진 결정과 그 이후 사업 추진 과정에 미친 영향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인의 유전인수사업 추진이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하고, 그에 따라 OOO와 피고인 3 등에게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여 철도재단에 손해를 가한 데에 대한 범의와 불법이득의 의사가 모두 존재한다”고 판단하였다.

31) 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2도15890 판결.

32) 대법원 2007. 6. 1, 선고 2006도1813 판결.

33) 대법원 2007. 6. 15, 선고 2005도4338 판결.

34) 대법원 2004. 3. 26, 선고 2003도7878 판결.

35) 대법원 2007. 7. 26, 선고 2005도6439 판결.

36) 재산범죄에서의 재산개념은 크게 (1) 법률적 재산설과 (2) 경제적 재산설, (3) 법률적·경제적 재산설로 나누어진다. (1) 법률적 재산설은 형법의 재산개념을 민사법상 개인의 모든 권리와 의무로 이해하되 재산적 이익을 순수하게 법률적으로만 파악하며, 경제적 가치의 유무를 문제 삼지 않는다. (2) 경제적 재산설은 형법의 재산개념을 ‘모든 경제적 교환가치 있는 개인의 이익(alle geldwerte Güter einer Person)’으로 이해하고, 그 법적 성격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다. 우리 판례와 독일의 판례가 이 견해를 취하고 있다. (3) 법률적·경제적 재산설은 절충적 입장으로, 형법의 재산개념을 법률적으로 허용되는 모든 경제적 가치로 이해하여 일차적으로는 경제적 관점에서 파악하나, 법질서 통일의 관점에서 법질서가 명백히 인정하지 않는 지위까지 형법의 재산개념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형법에서 보호대상이 되는 재산상의 이익은 법질서에 의하여 인정된 경제적 가치에 한정한다. 우리나라 다수설이며, 독일에서도 다수설로 소개되고 있다(이정원, “사기죄에서 ‘재산상 손해’의 개념에 관한 연구”, 「비교형사법연구」제2호, 한국비교형사법학회, 2000, 120-123면 참조).

생각건대, 재산개념은 경제적 가치를 본질로 하는 한편, 법률적 가치에 의한 제한이 필수적이므로 다수설과 같이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37) 대법원 2009. 1. 15, 선고 2006도6687 판결; 대법원 2002. 2. 5, 선고 2001도5789 판결.

38) 대법원 1995. 3. 24, 선고 95도203 판결; 대법원 1991. 5. 28, 선고 91도668 판결; 대법원 1983. 4. 26, 선고 82도3088 판결.

39) 대법원 1983. 4. 26, 선고 82도3088 판결.

이상으로 대구수성구형사전문변호사 천주현 박사의 저서 ‘수사와 변호’를 통해 ‘변호권 행사의 실천적 연구_사건의 초기단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천주현 변호사는 대구에서 부동산강제집행효용침해, 강제집행면탈죄 등 다수의 형사사건을 취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