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형사변호사 천주현 박사(대한변호사협회 대구 경북 현직 1호 형사전문)의 저서 ‘시민과 형법’를 통하여, ‘재벌 2세의 일그러진 사랑’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시민과 형법 7회차]

‘재벌 2세의 일그러진 사랑’

‘시민과 형법’ (박영사)

제1편 변호인 리포트

[7] 재벌 2세의 일그러진 사랑

최근 미국 힐튼호텔그룹 상속자인 콘래드 힐튼은 사귀던 전 연인이 더 이상 만나주지 않자 그의 집을 찾아갔다가 피해자의 집 앞에서 체포당했다. 그는 앙심을 품고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행패를 부렸고, 그녀의 아버지 소유의 벤틀리 차량에 몰래 들어가기도 했다.

LA 경찰국 대변인의 발표에 따르면, 힐튼은 오전 4시 50분경 피해자의 집 앞에 세워져 있던 벤틀리 안에서 검거됐고, 체포 당시 피해자가 신청한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경찰은 그에게 차량 절도와 법원의 접근금지명령 위반혐의를 적용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데이트 폭력의 법적 구성이 우리나라도 동일할까.

우선 우리나라에는 힐튼이 받은 접근금지명령(민사집행법 제305조 제2항)을 위반해도 일반적 처벌규정이 없다. 따라서 접근금지 가처분의 신청취지에 ‘위반 시 1회 당 얼마 원’의 간접강제를 추가하여 신청하고 있다. 실제 법원의 접근금지 가처분이 인용되었는데도 의부증 증세를 보이던 딸을 위해 장모가 청부살인업자를 보내 피해자를 수시로 미행하다가 결국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여대생 공기총 청부살인사건).

예외적으로 가정폭력의 경우에는 피해자에 대한 접근이 처벌되는 경우가 있다. 판사의 보호처분이 확정되었는데도 가해자가 불이행한 경우, 피해자보호명령 또는 임시보호명령을 받고 이를 어기면서까지 피해자에게 접근한 경우에는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63조 보호처분 등의 불이행죄에 따라 처벌된다. 그리고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59조(보호처분 등의 불이행죄)도 그 취지가 같다.

다음으로 힐튼이 타인의 주거에 허락 없이 들어간 것이라면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형법 제319조).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이 있었던 경우이므로 의사에 반해 사생활의 평온을 깨뜨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침입은 권한 없이 함부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므로 평소 명시‧묵시의 허락으로 내 집처럼 출입하거나 동거관계에 있어 출입권한이 있었던 경우에는 동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또 출입권한이 있거나 공공의 출입을 허용한 곳은 범죄의 목적을 갖고 들어가야만 처벌된다. 공공화장실에 성범죄의 목적으로 함부로 들어간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힐튼이 피해자의 부친 소유 차량에 몰래 들어간 행위는 미국에서와 같이 차량절도죄인가.

우리나라에서 절도란 배제의사 및 이용의사가 합쳐진 개념이다(형법 제329조). 따라서 일시적으로 이용하고 돌려줄 마음으로 타인의 물건을 잠시 갖고 간 후 실제로 돌려주었다면 절도죄로 처벌할 수 없다(가치손상이 있을 경우 손괴죄로 처벌됨은 별론). 그러한 원칙을 깨면서까지 처벌규정을 두고 있는 예외가 하나 있다. 바로 자동차등불법사용죄 조문이다. 권리자의 동의 없이 타인의 자동차, 선박, 항공기 또는 원동기장치자전차를 일시 사용할 경우에는 가져간 자동차 등을 돌려주더라도 처벌된다(형법 제331조의2).

사안에서 힐튼은 차량을 갖고 달아나지 않고 피해자의 집 앞에 있던 차 안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었고, 또 차량을 원래 용도대로 이용한 것도 아니므로 절도죄, 자동차불법사용죄 어느 것으로도 처벌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힐튼이 차량에 몰래 들어가 숨어 있던 것이 침입죄에 해당할까.

형법은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때에는 침입죄로 처벌하지만(형법 제319조), 열거되지 않은 ‘차량’에 몰래 들어간 것은 처벌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힐튼이 벤틀리 차량 내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침입 후 수색했다면 예외적으로 자동차 수색죄로 처벌될 수 있겠지만(형법 제321조), 힐튼은 차량에 탑승하여 몰래 숨어있었을 뿐이므로 수색죄로도 처벌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 형법으로는 힐튼을 의사에 반해 주거지에 들어간 주거침입죄로 처벌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처벌할 길이 없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입법보완이 필요하다.

이상으로 대구형사변호사 천주현 박사의 저서 ‘시민과 형법’를 통해 ‘재벌 2세의 일그러진 사랑’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천주현 변호사는 대구에서 폭행, 가정폭력, 존손폭행, 특수폭행, 폭행치사상 등 다수의 형사사건을 취급하고 있습니다.